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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게임

유희왕 VRAINS (2017~2019)

 

작년 9월에 한국 넷플릭스에 유희왕 브레인즈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일본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 또 다른 지인에게 추천을 받아서 보게 되었다. 원래 영상물 보는 걸 힘들어해서 사실은 볼 생각이 없었으나 추천을 두 번이나 받은 데다가 잘생긴 캐릭터가 나와서(중요) 꼬박 한 달 반에 걸쳐 봤다. 유희왕 시리즈라고는 오래 전에 원작 만화책을 읽은 게 전부고, 듀얼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도 없이 듀얼이 잔뜩 나오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보느라 나름대로 고생했으니 뭐라도 후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써 본다.

(불호발언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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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제작진이 <알파고 vs. 이세돌> 대국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아닌가 하는 인상(농담).

물론 완전히 농담은 아님. 주제 자체가 AI와 인간의 교류를 다루는 내용이고, 프로그래밍 알고리즘의 예제로 많이 쓰인다는 <하노이의 탑> 문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데이비드 보먼과 HAL9000, 그 유명한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등에서 모티브를 따온 네이밍과 장면이 다수 존재한다. 기술 발전에 따라 인간보다 뛰어난 우수한 컴퓨터 인공지능, 인간형 로봇 혹은 복제인간 등이 만들어져 그들이 도리어 인류의 삶을 위협한다는 테마는 고전 SF에서 즐겨 다루던 주제지만(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1968년작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최근 AI 기술의 발전으로 게임에서 인간을 이기는 컴퓨터라는 개념이 현실화되고 있는 만큼 이를 다시 재조명해 보았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 애니메이션이 굳이 <유희왕>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느낌은 있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듀얼로 인간을 이기는 인공지능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유희왕>에서밖에 그릴 수 없으니까.

 

구성은 1기 하노이의 기사 편, 2기 이그니스 편, 3기 Ai 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알기 쉽게 그 서브타이틀이 그대로 해당 시즌의 적이다. 3기의 경우 1~2기에 비해 분량이 지나치게 짧은데 조기종영 루머가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저연령층 대상 애니메이션이라서 그런지 알기 쉬운 키워드와 복선, 상징 채용과 어떻게 보면 뻔한 정석적인 스토리 전개를 볼 수 있다. 물론 다루는 주제가 무겁고, VR 가상공간 무대라는 것을 빌미로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잔인한 장면(팔 절단이라든지) 때문에 실제 타깃은 성인층이라는 느낌을 받긴 한다.

 

1기는 흔히 그렇듯이 캐릭터와 배경 소개, 그리고 브레인즈 전체에서 스토리를 이끌어나갈 발판이 되는 SOL 테크놀로지, 하노이의 기사, 그리고 로스트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그니스의 존재는 자세히 다루어지지는 않고 그 일원인 Ai만 등장.

하노이의 기사는 말 그대로 <중간까지는 적으로 나오지만 결국은 나중의 공동의 적(이그니스)에 대항해서 손을 잡게 되는, 적도 아군도 아닌 애매한 조직>이라 플레이메이커와의 대결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었다. 원래 바람의 검심의 어정번중 같은 조직을 좋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두머리인 코가미 료켄의 얼굴이 잘생겼다. 그의 맨얼굴이 언제 나올지 기대하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

사실 보기 전에 료켄이 섬의 궤적의 크로우와 닮았다는 첫인상이 있었는데 <어리지만 유능하고 정체를 잘 숨기는 테러리스트 조직의 우두머리>, <주인공보다 연상이며 주인공과 좋은 관계를 쌓지만 속인 것이고 사실은 쓰러뜨려야 할 적>, <이상하게도 주인공의 집착의 대상>, <부친(크로우는 할아버지지만)의 죽음에 대해 복수> 같은 점이 닮았다고 생각했음... 심지어 머리색도 같았다... 누가 봐도 내 최애가 될 캐릭터... 코가미 료켄...

아무튼 듀얼의 룰을 잘 모르는 초심자 입장에서는 1기의 듀얼이 가장 보기 힘들었다. 브레인즈는 링크 소환을 주로 사용하는데 조건에 맞는 저레벨 몬스터를 잔뜩 소환해서 링크 소환을 반복해서 고레벨 링크 몬스터의 효과를 가지고 전투하는 방식이 주로 등장하는 와중에 매번 링크 소환을 할 때마다 애로우 헤드를 확인하는 뱅크신이 반복해서 나와서 보기 괴로웠다. 나중에는 링크 소환 장면이 나오면 바로 스킵부터 함. 그리고 아무리 듀얼의 흐름이 이리저리 바뀌어도 어차피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스피드 듀얼이라면 플레이메이커의 LP가 1000 이하가 되어서 스톰 액세스를 사용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그 전에 어떤 식으로 듀얼이 진행되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플레이메이커가 데이터 스톰 가챠를 돌려서 "우연히도" 그 상황에 딱 들어맞는 새로운 고급 에이스 몬스터를 뽑고 승리하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이렇게 작위적이고 사람 허탈하게 만드는 게임도 또 없을 것이다. 주인공은 본인의 실력보다 운에 더 의지하는 듀얼리스트인가? 그런데 그것이 매번 나온다. 그리고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상대방 카드 설명을 전혀 읽지 않는다. 나는 유희왕 듀얼을 잘 모르지만 OCG 유저들에게는 미스플레잉이 너무 빈번하다고 욕을 먹은 것으로 알고 있다. 듀얼을 잘 모르고 카드 이름 따위는 외우지 않는 나한테도 왜 전에 한 번 등장했던 카드인데도 또 상대방 카드 효과를 고려하지 않는 것인지 느껴졌으니 오죽하겠나. 또 카드 효과도 그냥 전개를 위해 그 상황에 맞는 효과를 가진 카드가 한두 번 나오고 그 이후로는 등장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1기에서 특히 두드러지지만 2기 이후에도 이 흐름은 이어진다... 이런 식이니 듀얼, 특히 스피드 듀얼에 거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문제는 이 애니메이션은 듀얼 장면이 러닝타임의 80% 이상이며 그 중 스피드 듀얼이 80% 이상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전부 견디고 완주한 내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물론 코가미 료켄의 얼굴 덕분이다.

듀얼이 러닝타임의 80%라는 것은 쉬어가는 에피소드가 없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나마 긴장감 있는 듀얼을 하지 않는 화는 총집편이거나 시마가 등장하는 부분이었다. 이것도 특히 1기가 심한데 스토리가 진행될 기미만 보이면 반드시 흐름을 끊는 총집편이 나와서 김이 새기 일쑤다. 제작 환경이 좋지 않아서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일단 이건 이해한다. 애니메이션 보기 힘들어하는 입장에서는 일상편 없이 타이트하게 전개되고 빨리 끝나는 것도 괜찮지만, 그나마 일상편이라고 나오는 에피소드도 너무 부실했다. 결국 듀얼부의 존재의의는 뭐였던 건가? 유사쿠도, 2기의 타케루도 듀얼부와 엮이는 장면이 있지만 자이젠 아오이와 스쳐지나가는 장면이나, (약간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눈치없는 조역인) 시마 외에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이런 식이어서 1기의 진행은 빡빡하면서도 루즈했다. 정리하자면 시청자에게 적당한 몰입과 배경설명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데 중요한 듀얼장면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리볼버의 얼굴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버틴 1기였다...

 

2기로 넘어가면, 1기에 예고된 대로 Ai를 제외한 나머지 이그니스가 소개되면서, 하노이의 기사들이 우려한 대로 인류를 멸망시키고자 하는 인공지능이 정말로 등장하고 이그니스 간의 대립이 그려진다. <인류멸망> 편에 서는 이그니스는 역시 알기 쉽게 어둠의 이그니스인 Ai의 정반대인 빛의 이그니스다.

신캐릭터인 호무라 타케루가 2기부터 등장하는데 로스트 사건의 또 다른 희생자이면서 우리 편에 가담하는, 불의 이그니스와 파트너십을 이루고 있는 캐릭터이다. 이 캐릭터의 등장과 합류가 너무 편리하고 심심한 전개를 취하고 있고, 후반에는 거의 서브 주인공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조명을 받는 캐릭터, 심지어 얼굴도 잘생기고 비중도 높아서 남초 커뮤니티에서 욕 좀 먹었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틀리지 않은 듯함). 개인적으로는 좋아한다. 난 잘생기면 좋아한다... 사실 정석적인 주인공의 서사는 유사쿠보다는 타케루가 갖고 있기도 한데 그 점이 재미있다. 끔찍한 사건을 겪고 마음을 닫고 있다가, 같은 사건을 겪고 영웅이 된 사람을 동경해서 상경하고, 그의 동료가 되고, 자신이 동경하던 사람과 직접 듀얼을 하고 결국 과거의 사건과 관련된 인물과도 결판을 내면서 성장을 이룬다. 개인적으로는 3기에서 Ai의 처우를 두고 대립하는 소울버너 vs. 플레이메이커의 대결이 있었더라면 재미있었을 것 같다. 리볼버와의 대결도 중요하지만, 파트너를 이미 잃은 소울버너와 파트너를 잃고 싶지 않은 플레이메이커의 입장이 갈리는 장면이 있었다면 유사쿠와 타케루의 캐릭터성도 좀더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사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2기가 가장 문제가 심각하다. 1기의 단점이 개선된 것은 그나마 링크 소환 연출이 다이나믹해지고 뱅크신이 없어졌으며 총집편이 줄었다는 것. 마스터 듀얼 비중이 늘어나고 중요한 듀얼은 마스터 듀얼로 주로 진행하면서 스톰 액세스 사기가 줄었다는 것(그런데 이거 스피드 듀얼을 홍보해야 하는 애니메이션 아니었나? 왜 마스터 듀얼이 더 재미있지?). 천편일률적인 링크 소환 외에 엑시즈 소환이나 싱크로 소환이 등장하면서 배틀의 다양성이 확보되었다는 것(그런데 이거 링크 소환을 홍보하는 애니메이션 아니었나? 이하동문).

우선 2기의 BOSS인 라이트닝, 보먼, 윈디 일당의 캐릭터적인 문제가 심각하다.

윈디는 말 그대로 아예 캐릭터성이라는 게 없는데 라이트닝에게 정신조작을 당해서 자아를 잃고 라이트닝의 아바타처럼 단순한 수하로 부려졌음이 드러났고 그의 오리진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맥거핀으로 남았다. 블러드 셰퍼드가 말려들었던 교통사고가 윈디가 자신의 오리진을 해치우기 위해 일으킨 사고이지 않을까 하는 암시 정도는 남지만 그 외의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보먼은 2기 초반에 플레이메이커의 진짜 자아라는 식의 페이크가 나오는데, 누가 봐도 개 짖는 소리인데 연출자의 의도는 이걸 보는 시청자가 정말로 충격받고 걱정하기를 원해서 넣은 대사인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시청자를 바보로 아는 건가? 방영 당시 리얼타임으로 본 지인은 정말로 충격받고 걱정했다고 했는데 내가 리얼타임으로 봤으면 그런 저질 헛소리로 시청자를 애태우려는 의도가 너무 기분나빠서 1주일 동안 이 애니 그냥 하차할지 고민했을 것 같다. 그런 대사를 넣으려면 보먼이 정말로 플레이메이커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어야 했다. 라이트닝이 보먼을 만들 때 정말로 <플레이메이커의 데이터>를 사용했고, 왜 그것이 플레이메이커의 데이터여야 했는지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면 짜증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인간을 배척하고 싶어하는 인공지능이 자신이 융합될 대상, 자신보다 상위의 존재로 만들고자 창조해낸 최고 걸작에게 왜 하필 일시적으로나마 스스로가 인간이었다는 기억을 부여하는지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스토리적으로 앞뒤도 맞지 않고 단지 그 순간의 전개를 위한 자극적인 대사 이상의 의미가 없다. 후반으로 가면 그 기억에 대한 추가적인 언급도 없고, 보먼은 그저 플레이메이커를 이기고 싶어할 뿐이다. 1기의 리볼버와 3기의 Ai에 비해서 보먼의 캐릭터는 너무 얄팍하다. 주변 캐릭터와의 관계도 그저 동생인 하루와의 (다소) 일방적인 감정적 교류만 있고, 창조주인 라이트닝과도 최종보스와 그의 비겁한 수하 정도로 그려지는 것이 끝이며, 플레이메이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이겨야 하는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1기의 리볼버와는 로스트 사건과 관련하여 해당 사건의 원흉의 아들이자 한패이며 동시에 생명을 구해준 사람이라는 복합적인 은원이 있고, 3기의 Ai는 자신을 오리진으로 한 인공지능이자 처음부터 파트너였던 캐릭터이니 말할 것도 없이 깊게 엮여 있지만 보먼은 그런 게 없다. 그저 라이트닝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라이트닝보다 조금 덜 비겁하고 덜 멍청한 상위 인공지능일 뿐. 기껏 명작 영화에서 따온 이름이 아까울 따름이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라이트닝의 캐릭터성이 얄팍하다는 데서 나온다. 어둠의 이그니스인 Ai와 대립되는 빛의 이그니스이면서, 리더이면서도 동료들을 기만하고 배신했지만 어쨌거나 Ai에게는 세상에서 5명밖에 없는 동료 중 하나이고, Ai가 인간 편에 서서 같은 이그니스를 적으로 돌린다는 마음아픈 선택을 하게 만들면서, 이후 Ai의 또 다른 선택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Ai에게 정말로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캐릭터다. 그런데 그 중요한 역할에 비해 라이트닝의 캐릭터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비겁하고 단순한 악당이다. 이게 뭔가? 웬만한 피라미 악당도 이것보다는 캐릭터성이 복합적일 것이다. 덕분에 유희왕 브레인즈 2기는 그저 악당 로봇의 반란을 신나게 때려잡는 활극이 되어 버렸다. 이런 패턴은 1960년대 정도의 양산형 SF 아니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2기는 1기와 3기를 연결하고 본격적으로 3기로 이어지는 복선을 마련하는 중요한 허리 역할을 하는 에피소드인데 모든 면에서 당위성이 떨어진다.

조연 캐릭터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블루 앤젤이 가장 심하다. 1기에서 스펙터와 대결할 때 블루 앤젤이라는 동화책에 대해 언급이 나오고 그 닉네임이 자이젠 아오이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처럼 나오는데 어느새 블루 걸이니 블루 메이든이니 하면서 블루 앤젤은 그저 오빠에게 의지하기만 하던 과거의 나약한 자신으로 정리해 버리고 끝이다. 어린 시절의 그녀가 동경하던 동화책 속의 블루 앤젤이 상처받아 울고 있다. 스토리 전개에 편리하게 오빠에게 의지했다가 대립했다가 협력했다가 하면서 일관적인 캐릭터성이라고는 없고 듀얼 전적은 패배로 얼룩져 있다. 120화 내내 블루 앤젤이 중요한 듀얼에서 이기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는데 대체 그녀의 성장이 외모 변경 외에 느껴지긴 하는가? 왜 이렇게 지기만 하는 캐릭터를 모두가 카리스마 듀얼리스트라고 추켜세워 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아쿠아를 얻으면서 뭔가 역할을 하긴 하지만 그 아쿠아도 자신이 아닌 친구의 파트너라서 관계성이 떨어진다(원래는 아오이가 아쿠아의 오리진이었던 것 같지만 그 설정대로라면 아키라의 행동이 앞뒤가 맞지 않게 되어서 수정되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듯하다). 인간 캐릭터와도 아키라와의 관계성과 엠마와의 우정 빼고는 의미있는 관계성을 구축하지도 못한다. 그 엠마도 아키라와의 동맹관계, 아오이와의 우정과 오빠인 블러드 셰퍼드와의 관계를 빼면 남는 게 없으니 유유상종이리라. 요즘 일본에서도 여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여성 캐릭터에 대한 취급도 많이 나아졌을 텐데 이렇게 여캐를 심하게 다루는 작품 정말 오랜만이다. 딱히 최근 작품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적어도 블루 앤젤이 오마주한 원본인 것이 분명한 블루 로즈는 훨씬 입체적이고 일관적인 캐릭터였다(참고로 타이거&버니는 10년 전 작품이다).

한편 같은 카리스마 듀얼리스트인 고 오니즈카는... 듀얼 장면을 늘리기 위한 제작진의 꼼수에 희생되었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취급이 엄청나다. 1기에서는 어느정도 성장을 보여주는 듯하더니 2기에서 최악의 캐릭터 붕괴를 보이고 인공지능을 머리에 이식하면서 승리에 미쳐 있다가 3기가 되자마자 거짓말처럼 인공지능과 결별하고 회개하는데, 2기의 전개가 하도 최악이어서 AI와 인간의 하이브리드가 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짚지도 못했다. 그저 플레이메이커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샌드백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불쌍하지만 후일담에서 다시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챔피언으로 돌아왔으니 본인은 행복할 것이다.

SOL 테크놀로지도 일종의 조역인데 이쪽은 제 3의 세력으로서, 그리고 만악의 근원으로 FF7의 신라 컴퍼니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조직으로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악역들에게 실컷 이용만 당하고, 자이젠 아키라의 승진의 발판으로만 사용되고, 퀸은 잘난척하며 나왔지만 결국 3기 초반에 쓰러지는 피라미이며 체스말로 나오는 주주들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사라지고 허울 좋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는 캐릭터가 하야미가 아니었나 한다. 대체 그런 무능한 캐릭터를 회사에 계속 붙어있게 하는 점에서 회사의 무능함의 극치가 드러난다.

 

3기. 사실 제작진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3기에 있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스토리라는 느낌이 들고 앞뒤가 잘 맞으며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아마도 조기종영이 결정되어서) 짧은 방영 화수 안에 욱여넣은 급전개와, 완결 1~2화 전이 되어서야 Ai의 설명충 스피드웨건으로 모든 복선이 서둘러 회수되고 마무리되어버리는 구성에 아쉬움이 크다. 무엇보다 2기에서 라이트닝의 캐릭터가 얄팍했던 것이 3기 감상에 너무 큰 영향을 끼쳤다. 3기에서 Ai가 적으로 돌아서는 계기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그가 3기 보스라는 건 안 봐도 비디오라는 전제) 2기의 단점이 3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데 실망이 더 컸다. 라이트닝이 사용하던 저지먼트 애로우를 Ai가 이어받아 사용하는 장면에 개인적으로 짜증을 느낀 것도 이 탓이 크다. 라이트닝과 Ai의 대립이 제대로 깊이있게 그려졌다면 Ai가 결국 인간을 배신하고 라이트닝의 유지를 잇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도 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라이트닝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납작한 악당 캐릭터였던 만큼 라이트닝에게 영향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Ai의 행동 역시 같이 얄팍하게 비춰지고 만다. 지금까지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유사쿠와 우정을 쌓아온 듯한 묘사가 있고, 1기 초반부터 배신할 것이라는 암시를 끊임없이 주면서도 변절의 이유를 추측하기 힘들게 하는 것이 3기의 Ai의 배신의 묘미인데, 3기 초반의 (이그니스가 자기 혼자 남아 외롭고 AI는 인간과 다른 존재이니 공존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이 기존의 Ai의 캐릭터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뜬금없고 억지스러워서 2기의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스토리 외적으로는 대놓고 다른 사정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해 이야기로서의 재미가 떨어진다. 무엇보다 Ai는 인간인 유사쿠나 쿠사나기와 훨씬 깊은 친분을 쌓았으면 쌓았지 같은 이그니스인 라이트닝에게는 동족으로서의 동료애를 느꼈다는 묘사가 거의 없고, 사이버즈 세계에서는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고 평가하고, 변절한 후에는 단순히 배신자, 물리쳐야 하는 적 이상으로는 취급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이제와서 5명의 이그니스 동료 모두에게 인간과는 다른 특별한 애틋함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연출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윈디로 넘어가면, 시청자는 윈디가 원래 어떤 녀석이었는지 알지도 못한다. 플레임이 언급한 대로라면 윈디는 좀더 '말이 통하는 녀석'이었던 것 같지만 Ai는 원래부터 윈디에게 껄끄러운 감정을 느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결국 어느 쪽인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Ai는 부루루도 피카리도 자신의 덱에 평등하게 넣어 놓고 도싱이나 아치치나 히야리와 똑같이 애틋함을 느끼고 있다. 그럴 거면 이왕 하는 김에 보먼과 하루도 한 자리 넣어주지 그랬나...

사족이지만 도싱의 이름 유래는 닌텐도에서 나온 <거인 도싱>이라는 고전게임인 듯하다.

로봇삐와 소울 버너의 대결, 그리고 리볼버와 소울 버너의 대결 장면은 좋았다. 아마 3기 분량상 예정되어 있던 많은 듀얼 장면이 커트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듀얼들은 꼭 필요해서 빼지 못하고 넣은 것 같다. 공교롭게도 둘 다 소울 버너가 맡고, 또 소울 버너가 승리하는 결과라 3기에서 소울 버너 띄워주기가 부각되어 보이긴 한다. 고 오니즈카와 엠마, 블루 메이든은 2기에 이어서 3기에서도 여전히 취급이 좋지 않기 때문에(샌드백 취급이라는 뜻) 더 그렇게 보이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리볼버가 소울버너와 대결하는 장면 외에도 중요한 듀얼 하나 정도는 더 맡아줬으면 했지만 조기종영 상황에서(이미 기정사실화하고 있음) 이 정도 챙겨준 걸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듯...

마지막 듀얼에서 엔딩까지. 비록 어른의 사정으로 스피드웨건 설명충이 되어버렸지만 사쿠라이 타카히로의 애절한 연기로 들으니 설득력이 배가되어 감정이입이 되었다. 본체가 데이터인 Ai에게는 시뮬레이션도 현실처럼 느껴진다는 것, 그리고 Ai가 계속 가지고 있던 슬픔이 이미 과거의 일이라 돌이킬 수 없는 동료들의 죽음에 관한 감정과 함께, 자신이 경험한 미래(유사쿠의 죽음)에 대한 감정 역시 공존하고 있다는 부분이 좋았다. 또한 그 시뮬레이션에는 유사쿠와의 듀얼이라는 변수는 상정되어 있지 않아서 그 변수가 개입된 이후에는 미래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들어갔다는 것도 상징적이라고 생각된다. 자신도 듀얼리스트로서 듀얼의 결과를 함부로 시뮬레이션한다는 짓을 하지 않는다는 Ai의 나름의 자존심이 느껴지기도 했고, 이제 정말로 시뮬레이션에 없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열린 결말까지도 잘 처리되었다고 생각한다. Unknown Journey... ...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구글 검색에 첫 번째 자동완성으로 뜨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열린 결말은 좋아한다. 유사쿠가 Ai와의 듀얼에서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강조해놓고 마지막에 잠적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높은 것으로 아는데, 브레인즈는 링크 브레인즈로 사람 간의 소통(=듀얼...)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라 현실 세계에서 만날 수 없어도 플레이메이커가 링크 브레인즈에 접속했고, 유사쿠의 귀환을 믿고 기다리던 동료들이 그를 맞이하는 내용의 신뢰의 끈은 어느 정도 그려지지 않았나 한다. 그리고 유사쿠가 3개월에 걸쳐 Ai의 부활을 시도한 것도, 바뀐 미래에서 다시 AI와 인류의 공존을 시도하기 위한 Ai와 유사쿠의 도박 정도로 이해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만족함. 충분한 분량을 가지고 이런 내용이 자세히 그려졌으면 세간의 평가도 바뀌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2기의 꼬라지를 보면 제작진들이 그렇게 충실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 것 같지 않긴 하다... 역시 플롯에 구멍을 남겨야 팬들이 빈틈을 멋대로 메우면서 선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교훈을 주는 브레인즈 3기였다.

 

어쩌다보니 욕만 잔뜩 했지만 사실은 정말 즐겁게 봤다. 초반에는 코가미 료켄과 최애캐와의 공통점을 찾으며 그의 얼굴이 공개되길 기다리며 신나게 봤고 중반에는 바뀐 리볼버 아바타의 얼굴을 누렸으며 후반에는 Ai의 변절과 사쿠라이 타카히로의 연기를 보며 만족했다. 추천해주신 두 분께 감사를 드리며... 저는 료켄 최애이며 遊了가 좋으니 관련하여 많은 정보 공유를 부탁드립니다.